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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말의 허리를 잘랐는가
김승배 객원 컬럼위원 기자   입력 2026.04.03 pm02:52   기사승인 2026.04.06 am07:14 인쇄
▲ 김승배 객원 컬럼위원 ©시사강원신문
언어는 소리의 기록이기 이전에 민족의 사유가 응집된 '의미의 결합'이다. 우리가 강릉을 [강능]이라 발음하면서도 굳이 '강릉(江陵)'이라 적는 이유는 명백하다. '강(江)'과 '능(陵)'이라는 각 글자가 품은 고유한 어원과 역사적 층위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만약 소리 나는 대로 '강능'이라 쓰기 시작한다면, 그 지명이 품은 천 년의 역사는 순식간에 휘발되고 만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맞춤법은 어떠한가? 1988년, 당시 문교부와 국어연구소의 학자들은 '현실 발음'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말의 근간을 흔드는 대죄를 범했다. '우유(牛乳)'와 '값'이 만났다고 느닷없이 'ㅅ'을 박아 넣어 '우윳값'이라 쓰고, '유류(油類)'와 '값' 사이에 'ㅅ'을 덧대어 '유륫값'이라는 기형적인 괴물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어의 형태소적 원형을 난도질하는 자해 행위이자, 학문적 엄밀함을 상실한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이다.

당시 규정을 밀어붙인 이들은 '된소리 현상'을 시각화해야 한다는 얕은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언어의 투명성(Transparency)을 스스로 포기한 처사다. '우유'라는 완결된 한자어 체계에 정체불명의 'ㅅ'을 끼워 넣는 순간, 후대 인들은 이 단어의 뿌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길을 잃는다. 소리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글자는 그 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소리에 취해 글자의 뼈대를 뭉개버린 작금의 맞춤법은 본객이 전도된 꼴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북한의 '조선말규범집'을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한글 학자들은 '형태주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며 단어의 본래 모습을 지켜냈다. 발음이 [우윢깝]으로 나더라도 표기는 '우유값'으로 유지함으로써,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의 결합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들이 민족어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어원을 보존할 때, 남한의 학자들은 '우윳값', '유륫값' 같은 흉측한 덧살을 붙여 우리 어휘를 고립된 섬으로 만들었다.

단어는 소리의 노예가 아니다. '우윳값' 같은 기괴한 표기는 우리 눈을 어지럽히고 어원을 가리는 장벽일 뿐이다. 학문적 논리도, 역사적 예우도 없는 이 비논리적인 규정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조상의 지혜가 담긴 한자어와 우리말의 결합 원리를 뿌리째 부정하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사리분별도 못하고 만든 이런 사이시옷 당장 폐지 해야한다.

sisag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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